한글은 보면 볼수록 멋지고 아름다운 글이죠. K-컬처를 타고 한국어와 함께 한글을 배우는 외국인도 많이 늘어나고 있답니다. 한글날이 생기게 된 유래부터 한글, 한글 창제, 훈민정음, 세종대왕까지 함께 알아봅시다.
목차
한글날 정의
한글날은 한글 창제와 반포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세종대왕의 성덕과 위업을 추모하고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지정되었어요. 양력 10/9일이죠. 5대 국경일 중 하나이면서 공휴일입니다.
한글날 유래
[훈민정음] 원본에 적힌 ‘정통(正統) 11년 9월 상한(上澣)-세종 28년 9월’을 양력으로 환산하면 10/9일이 됩니다. 10/9일이 한글날로 정해진 이유죠.
일제강점기에 일제는 우리말과 글을 쓰는 것을 억압하는 어문 말살 정책을 썼어요. 당시는 우리말을 쓰는 것이 민족정신을 가다듬는 한 방편이었고, 우리글을 쓰는 것을 일종의 독립 운동으로 여겼어요. ‘한글’이 우리 민족 정신 의지할 곳이었죠.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480년이 되던 1926년 조선어연구회는 음력 9/29일을 양력으로 고친 10/28일을 훈민정음 반포 기념일로 정했어요. ‘가갸날’이라고 불렀어요.
그 뒤 훈민정음 원본이 나타나 좀 더 가까운 날짜를 알게 되었어요. 정인지의 글에 훈민정음 반포가 9월 상순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죠. 조선어학회는 반포한 날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10/9일을 한글날로 정하게 됐어요. 1946년부터 한글날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2005년에 국경일로 지정되었고 2013년 공휴일로 재지정되었죠. 한글날은 기념식을 하고 세종문화상을 시상합니다. 경기도 여주에 있는 세종의 능인 영릉(英陵)을 참배합니다. 전국학술연구발표회 및 백일장 등도 열려요.
한글 정의
한글은 조선 제4대 왕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1443년 창제하여 1446년 반포한 우리나라 고유의 문자입니다. 훈민정음은 한글의 다른 이름이면서 책 이름이기도 합니다.
한글 창제 배경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이유는 훈민정음 서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위의 서문을 현대어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라의 말이 중국과는 달라
문자(한자)와는 서로 맞지 아니하므로
이런 까닭으로 글을 모르는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할 사람이 많으니라
내 이를 위하여, 가엾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노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 날마다 씀에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세종은 일반 백성이 글자 없이 생활하면서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음을 마음 아프게 여겼어요. 민중은 관청에 호소하려 해도 호소할 길이 없었고, 억울한 재판을 받아도 바로잡아 주기를 요구할 도리가 없었죠. 편지를 쓰려고 해도 어려운 한문을 배울 수가 없었어요. 농사일에 관한 간단한 기록도 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세종은 백성들의 딱한 사정을 매우 안타깝게 여겼던 성군으로, 주체성이 강한 혁신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어요. 한문은 남의 글이므로 한자를 빌려 우리말을 적더라도 뜻을 제대로 전할 수가 없었죠. 백성들의 안타까운 사정을 해결하고자 하는 세종의 애민정신이 한글을 만든 기본적인 이유였어요.
당시의 상황도 새로운 글자를 만들 수 있는 여러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 있었죠.
1) 고려 말 몽고에게 당한 치욕과 원-명 교체기 (원나라와 명나라의 교체)를 맞아 자아의식이 강해지기 시작했어요.
2) 주위의 민족들은 자기 나라의 글자를 가지고 있었으나 우리는 한자를 빌려 썼어요. 한자로 우리말을 표기하는 이두글[吏讀文]은 말을 적는 데 있어서 만에 하나도 전달하지 못했어요.
3) 학문을 좋아하고 백성을 위한 민본 정신이 투철했던 세종의 개인적인 역량이 새 글자를 만드는 데 크게 작용했어요.
4) 집현전에는 세종을 도울 만한 많은 학자들이 모여 있었죠.
5) 중국말 통역을 교육시키기 위해 중국 운학을 연구했는데 운학 체계는 새 글자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결국 1443년(세종 25) 음력 12월 세종은 ‘훈민정음’이라는 새 글자를 만들어 냈는데 이렇게 독창적인 글자를 만든 일은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훈민정음
1940년 안동에서 [훈민정음] 원본이 발견됐어요. 훈민정음은 한글의 다른 이름이자 책 이름이기도 합니다. 원본 훈민정음은 설명문이 모두 한문으로 되어 있어요. 훈민정음 본문과 훈민정음해례로 구성되어 있죠. 해례 (解例)는 ‘해(풀이)’와 ‘예 (보기)’입니다. ‘제자해(制字解)’ · ‘초성해(初聲解)’ · ‘중성해(中聲解)’ · ‘종성해(終聲解)’ · ‘합자해(合字解)’ · ‘용자례(用字例)’ 등 5해 1례로 되어 있어요.
본문은 ‘國之語音(국지어음)/ 나라의 말이’으로 시작되는 세종의 서문과 훈민정음 28자의 발음법을 한자로 풀이한 부분입니다. 28자는 초성 17자, 중성 11자입니다. 초성/중성/종성에 대한 풀이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초성에 대한 풀이입니다.
'ㄱ은 어금닛소리니 ‘君(군)’자의 처음 나는 소리(첫소리, 초성)와 같다. 나란히 쓰면 ‘虯(규)’자의 처음 나는 소리와 같다.'
ㄱ소리는 한문글자 ‘君’의 처음에서 나는 소리를 적는 것이라 하여, 이 글자의 소리를 일깨워 주고 있어요. 나란히 쓰면 ‘ㄲ’이 되는데, 이 글자는 ‘虯’자의 처음에서 나는 소리를 적는 것이라 했어요. 虯는 ‘규’인데, 당시에는 이 글자의 첫소리는 된소리가 옳은 발음이라고 판단했어요.
이런 방법으로 첫소리(초성) 17글자(ㄱ ㅋ ᄠᅳᆷ ㄷ ㅌ ㄴ ㅂ ㅍ ㅁ ㅈ ㅊ ㅅ ㆆ ㅎ ㅇ ㄹ ᅀᅠ)를 풀이합니다. ‘ㄱ ㄷ ㅂ ㅈ ㅅ ㅎ’ 여섯 글자를 나란히 쓴 ‘ㄲ ㄸ ㅃ ㅉ ㅆ ㆅ’ 글자의 소리도 풀이하고 있어요. 총 23자입니다.
가운뎃소리(중성)는 ‘ · ㅡ ㅣ, ㅗ, ㅏ, ㅜ, ㅓ, ㅛ, ㅑ, ㅠ, ㅕ'의 열하나입니다.
' · 는 ‘呑(탄)’자 가운뎃소리와 같다.'와 같은 방법으로 풀이하고 있어요. ‘呑(탄)’자는 세 소리로 되어 있는데, ‘ · ’는 그 가운데에서 나는 소리를 적는 글자라는 것입니다.
끝소리(종성, 받침)는 첫소리글자를 그대로 가져다 쓰도록 했어요.
그리고 첫소리나 끝소리에, 23가지 (17자+6자)의 첫소리글자 이외의 글자가 쓰이는 걸 설명하고 있어요.
‘입술가벼운소리(脣輕音)’는 ‘ㅂ’과 ‘ㅇ’을 세로로 써서 ‘ㅸ’로 적도록 했어요. 첫소리/가운뎃소리/끝소리에 둘 이상의 소리가 날 때는, 각각 두 글자 이상을 한 자리에 가로로 나란히 쓰도록 했어요. (예: ᄡᆞᆯ · ᄆᆡᆼᄀᆞᆯ · ᄃᆞᆰ).
첫소리/가운뎃소리 글자가 어울릴 때는, ‘ · ’와 ‘ㅡ’ 및 ‘ㅡ’를 가진 글자는 첫소리글자의 밑에 쓰게 했어요. ‘ㅣ’와 ‘ㅣ’를 가진 글자는 오른쪽에 쓰도록 했죠.
첫/가운데/끝 글자가 한데 모여야 소리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했어요. 모인 소리에는 다시 소리의 높낮이가 얹히게 됩니다. 높낮이는 세 가지로 구분했어요. 높은소리(거성)는 왼쪽에 점을 하나 찍고, 낮은소리(평성)는 점을 찍지 않고, 낮다가 높아가는 소리(상성)는 점 둘을 찍어 구별했어요.
첫소리글자를 만든 원리
한글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훈민정음해례가 나타나면서 원리가 밝혀졌어요.
제자해에 초성은 17글자인데, 어금닛소리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꼴을 본뜨고, 혓소리 ㄴ은 혀가 윗잇몸에 붙는 꼴을 본뜬다고 했어요. 입술소리 ㅁ은 입 모양, 잇소리 ㅅ은 이의 모양, 목소리 ㅇ은 목의 모양을 본떴다고 했습니다.
닿소리(초성)를 소리 내는 자리에 따라 다섯 가지로 나누었어요. 혓바닥의 뒤쪽을 여린입천장에 붙여 내는 소리를 ‘어금닛소리’, 혀끝을 잇몸에 붙여 내는 소리를 ‘혓소리’라고 했어요. 입술에서 나는 소리를 ‘입술소리’, 공기가 이끝에 닿아 부스러지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소리는 ‘잇소리’, 목 안에서 나는 소리는 ‘목소리’라 했죠.
이 다섯 가지 소리 가운데서 한 소리씩을 가려, 그 소리를 적는 글자 다섯을 만들었어요.
1) 어금닛소리는 ㄱ, ㅋ, ᄠᅳᆷ 음소들인데, ㄱ 음소를 적는 글자를 그 소리 낼 때의 혀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어요.
2) 혓소리는 ㄴ, ㄷ, ㅌ 음소들인데 ㄴ 소리를 적는 글자를 같은 원리에 따라 만들었죠.
3) 입술소리는 ㅁ, ㅂ, ㅍ음소들인데 ㅁ 소리를 적는 글자를 입술 모양을 본떠 만들었어요.
4) 잇소리는 ㅅ, ㅈ, ㅊ 음소들인데 ㅅ 소리 적는 글자를 이가 나란히 박혀 있는 줄의 모습을 본떠 만들었죠.
5) 목소리는 ㅇ, ㆆ, ㅎ 음소들인데 ㅇ소리 적는 글자를 목구멍의 둥근 모양을 본떠 만들었어요. ㅇ은 소리가 없는 글자지만 이것도 목구멍에서 나는 소리가 있는 것으로 생각했어요.
이렇게 ‘ㄱ ㄴ ㅁ ㅅ ㅇ’의 다섯 글자를 만들었어요. 소리가 세어짐에 따라 다섯 글자에 획을 하나씩 더해 아홉 글자를 더 만들었죠.
- ㄱ→ㅋ
- ㄴ→ㄷ→ㅌ
- ㅁ→ㅂ→ㅍ
- ㅅ→ㅈ→ㅊ
- ㅇ→ㆆ→ㅎ
다른 글자들은 획을 하나씩 덧붙였지만 ‘ㅁ’ 은 다릅니다. ‘ㅁ’에 획을 더해서는 글자가 잘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꼴을 약간 바꾼 것이죠. 나머지 ‘ᄠᅳᆷ ㄹ ᅀᅠ’은 각각 ‘ㅇ ㄴ ㅅ’의 꼴을 약간 바꾸어 만들었어요.
된소리는 현대국어 음운론에서는 독립된 음소로 봅니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는 된소리를 글자를 나란히 써서 ‘ㄲ ㄸ ㅃ ㅉ ㅆ(ㆅ)’으로 했어요. 입술가벼운소리를 적는 방법으로 ‘ㅂ’에 ‘ㅇ’를 내리써서 ‘ㅸ’를 만들었어요.
가운뎃소리 글자를 만든 원리
닿소리(초성)는 입안의 어떤 자리에서 특별한 막음이 있어요. 막음의 방법과 자리를 설명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음성기관의 움직임을 파악하고서 닿소리 글자를 만들어 냈죠.
홀소리(가운뎃소리, 중성)는 입안에 아무런 막음도 생기지 않습니다. 홀소리가 나누어지는 것은 혀의 모양에 의해서입니다. 그려내기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현대 음성학에서는 X-선 사진을 보고 혀의 모양을 잡을 수 있습니다. X-선 사진도 없이 홀소리 글자를 만드는 것은 힘든 일이었을 겁니다.
홀소리 글자 만드는 원리는 완전히 다른 데에서 구했어요. 이 방법은 성공적이었죠. 닿소리 글자의 기본을 다섯으로 정했듯이, 홀소리 글자의 기본은 셋으로 정했어요. ‘ · ’는 하늘을, ‘ㅡ’는 땅을, 그리고 ‘ㅣ’는 사람의 서 있는 모양을 본떠 만들었어요. 이렇게 세 소리의 글자를 먼저 만든 것은, 홀소리를 세 종류로 나누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 · ’ 계통 → ‘ · ’ 계통 →‘ ㅗ, ㅏ’ (하늘)
- ‘ㅡ’ 계통 → ‘ㅡ’ 계통 → ㅜ, ㅓ’ (땅)
- 중립 → ‘ㅣ’ (사람)
다른 글자는 모두 이 세 글자를 맞추어 만들었어요.
'ㅗ, ㅏ’: 위와 바깥쪽에 있는 것은 이 두 소리가 하늘에 속해서 양(陽)이기 때문이라고 했어요.
‘ㅜ, ㅓ’: 아래와 안쪽에 있는 것은 이 두 소리는 땅에 속해 음(陰)이기 때문이라 했죠.
점을 하나 찍는데도 그 철학적인 이유를 밝히려 했네요. ‘ㅣ’에서 시작하는 겹홀소리는 점을 둘로 해서 그 소리가 겹임을 암시하고 있어요.
스물여덟 글자는 한 음절을 한 묶음으로 하여 모아 쓰도록 되어 있어요. 한자와 같이 썼을 때 한자의 꼴과 균형이 잡히도록 하기 위해서였죠.
한글에 대한 이름
한글을 일컫는 이름은 여러 가지예요. 세종이 한글을 만들 당시에는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 불렀죠.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입니다. 소리는 글자라는 의미죠. ‘바른’이라는 의미는 한자를 구차하게 빌려 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말을 제대로 적을 수 있는 글자라는 뜻이에요. 훈민정음을 줄여 정음이라고도 했어요.
언문(諺文)이라는 이름은 최근까지 쓰였어요. ‘언’이란 ‘우리말’ 또는 ‘정음’을 가리키는 말로 보여요. 훈민정음해례에서 ‘언’은 우리글, 우리말의 뜻으로 쓰인 것이죠. 세종실록에는 언문청(諺文廳)이라는 말이 나오고 언문이라는 말도 나타납니다.
최세진의 훈몽자회에서는 ‘반절(反切)’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어요. '암클’이라고도 불렀는데 부녀자들이 쓰는 글로 선비가 쓸 만한 글은 아니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어요.
1908년 주시경(周時經)을 중심으로 ‘국어연구학회’가 만들어졌다가 1913년 이름을 ‘한글모’로 고쳤어요. 이때부터 ‘한글’이라는 이름이 쓰이기 시작한 듯합니다. 널리 쓰이게 된 것은 1927년 한글사에서 펴낸 [한글](7인의 동인지)이라는 잡지에서부터입니다.
‘한글’의 ‘한’은 ‘하나’ 또는 ‘큰’의 뜻입니다. 우리글을 ‘언문’이라 낮추어 부른 데 대하여, 훌륭한 우리말을 적는 글자라는 뜻으로 권위를 세워 준 이름입니다.
한글 각 글자의 이름
정음을 만들던 당시 한글 각 글자들의 이름은 분명하지 않아요. 지금 부르는 ‘기역, 니은' 이름이 처음 나타난 문헌은 16세기 최세진의 훈몽자회입니다.
최세진은 ‘ㆆ’을 없애고 나머지 27자를 1) 첫소리에만 쓰이는 8글자, 2) 첫소리/끝소리에 두루 쓰이는 8글자, 3) 가운뎃소리에만 쓰이는 11글자로 나눴어요. 2)와 3)은 지금처럼 이름을 붙였어요. 1)은 ‘ㅈ(지), ㅊ(치)’ 같이 한 음절 이름을 붙였어요.
1933년 조선어학회(한글학회)에서 한글맞춤법통일안을 내면서 1)도 두 음절의 이름을 붙여어요.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28글자 가운데 쓰이지 않는 ‘ㆆ, ㅿ, · (ᄋᆞ)’의 이름은 지어지지 않았어요. ‘ㅇ’과 ‘ㆁ’의 구별이 없어져 이름도 하나로 통일되었어요.
훈민정음 반포
훈민정음이 만들어진 기록은 세종실록 25년(음력 1443년)에 나옵니다. 12월조에 '이 달에 임금께서 몸소 언문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어내니… 훈민정음이라 부른다.'라는 기록이 있어요.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한글이 만들어진 것은 1443년 음력 12월임을 알 수 있어요.
그 후 세종실록 28년(1446년) 9월조에 '이 달에 훈민정음이 이루어졌다.'라는 기록이 보입니다. 훈민정음이라는 책이 만들어진 것을 뜻합니다. 1443년 음력 12월에 완성된 훈민정음 글자를 다듬고 자세한 풀이를 하여 1446년 음력 9월 훈민정음이라는 책으로 낸 것이라 할 수 있죠.
이런 사실은 1940년 발견된 훈민정음 원본(해례본)의 끄트머리에 붙인 정인지의 글에 있는 正統十一年 (정통 11년, 1446년 )이라는 말로 분명해집니다.
세종 대왕
세종 대왕 (世宗大王, 1397~1450)은 조선의 제4대 왕입니다. 이름은 도(祹), 자는 원정(元正), 시호는 장헌(莊憲)입니다. 1418년 22세에 태종에 이어 즉위했어요. 1450년까지 왕위에 있으면서 수많은 업적을 남겼어요. 세종 시대는 우리 민족사상 가장 빛나는 시기입니다. 집현전을 통해 많은 인재가 양성되었고, 유교정치의 기반이 되는 의례/제도가 정비되었어요. 다양하고 방대한 편찬사업이 이루어졌죠. 농업, 과학기술의 발전, 의약, 음악, 법제의 정리, 공법의 제정, 국토의 확장 등으로 민족국가의 기틀을 공고히 했어요. 그중 훈민정음 창제는 가장 빛나는 업적입니다. 능호는 영릉으로 여주시에 있어요.
2025년부터 5/15일은 '세종대왕 나신 날'로 국가기념일로 지정됩니다. 국가기념일은 달력에 해당 날짜의 의미를 되새기는 개념으로 공휴일은 아닙니다.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면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리는 행사가 확대될 것으로 보여요. 정부는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리고 창조정신과 애민 사상을 계승·발전시켜 문화국가로서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기념일로 지정한다고 설명했어요.
한글날은 한글 창제와 반포를 기념하는 날이죠. 한글을 만든 원리는 지금 봐도 매우 과학적이고 독창적입니다. 세계사에서 유례없는 창조물 중 하나로 꼽히죠. 멋지고 아름다운 한글을 더 의미 있게 써야겠어요.